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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주기는 가족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됩니다. 자신의 가족을 가족주기별로 분석해보세요. 각각의 주기별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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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형성하고 가정을 확대하면서 추후 가족을 축소하는 시기로 나눠질 수 있다. 즉 결혼부터 출산 이전까지 가족을 형성하는 기간이라고 하고 가족의 확대기의 경우에는 양육기와 교육기로 나뉘게 된다. 양육기의 경우에는 자녀를 출산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까지를 이야기 하며 자녀의 교육기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녀가 독립하기 이전까지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축소기는 자녀가 독립하는 시기와 함께 두 부부가 사망하는 데에 시기이며 이는 가족 생활 주기에 따라 나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글에서는 가족주기를 이해하고 각 주기별로 일어난 우리 가족의 사건과 그에 따른 나의 생각과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기술해 보도록 하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정을 이룬 시기는 1979년에 만났으며 소개팅으로 하여 가정을 형성하였다. 가정을 형성하였을 당시에는 아버지는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일에 몰두하셨고 밤낮없이 하루에 3시간만 잠을 자면서 일에만 몰두하셨다. 이에 어머니도 가정을 이끌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으셨고 그 사이에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언니가 위로 두명이 있었다.

언니들은 나와 1살 차이, 3살 차이로 어렸을 때에 기억은 많이 없지만 집이 풍족하지만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것에 절약하고 검소하게만 생활하였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자녀 양육기의 우리 가정은 세 자매를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지를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처음 부모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했고 어린이집에서 조금이라도 다치기라도 하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번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의 자매들을 보고 다치지 말고 피해를 끼치지 말라며 우리에게 많은 격려와 지지를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5살부터 나는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아직 뭣도 모르고 그저 놀기만 좋아했던지라 학원내에서 많은 다침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기억나는 사건들은 1년에 한번씩 평가하는 태권도무대에서 격파시범을 보여야 하는 일이 있었다. 대부분 합판의 경우에는 쪼개져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부실 수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아직 힘이 부족했던지라 격파시험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만 하지 못했었고 이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에 부모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구라도 실수도 할 수 있고 자기가 잘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라면서 많은 위로를 해주셨다. 어렸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것도 못하는 애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노력이 부족했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 사건으로 기억된다.

 

교육기 시기에는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시기였는데 어린티가 역역히 났던 기억이다. 언니가 바로 윗학년에 있고 누구보다도 자신감에 차있었던 때로 기억됬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교생활에 대한 불편함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언니가 소위 일진들이라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누구의 동생이라는 것으로 많이 불리워지게 되었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모르는 언니 오빠들이 날 아는 척을 할 때마다 불편함이 너무나 많았다. ‘왜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아는 척을 하지?’ 이런 속마음에 등교할 때마다 친구들과 다닐 때 나를 따로 불러내면 어찌 해야 할지 등과 같은 막연한 생각으로 공포감이 들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작은 언니와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고 부모님에게 좀 더 많은 의지를 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모르는 사람이 날 아는 척 한다던지 너무 과잉적으로 친절을 베풀게 되면 오히려 자리를 떠버리거나 도망를 가버리고 마음을 닫아버리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때 부모님은 작은언니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지만 점차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알기 시작했다. 친구와 쇼핑몰에가서 친구가 물건을 훔쳐서 작은언니도 같이 붙잡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부모님도 작은언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여러 문제들을 갖게 되었다. 세 자매다보니 학원도 모두 보내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작은 언니는 나와 큰언니를 위해서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하고 대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다. 연년생들이다보니 학비의 부담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채 나는 작은언니에 대한 불만들로만 가득차 있어서 어렸을 때에는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작은언니의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그러한 부담감을 나와 큰언니에게 많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언니가 희생을 함으로 인해서 나와 큰언니가 이렇게 배우고 살아갈 수 있다라는 생각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편함을 오롯히 나와 큰언니의 몫이였다.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들은 각자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는 각자 모두 독립을 하기 시작했다. 독립이라는 것이 학교의 생활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큰언니는 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결혼을 했고 작은언니도 결혼을 했다. 하지만 작은언니는 성격차이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나도 대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전선에 들어서부터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큰 독립은 아니였지만 잠깐이나마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각자 살아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던 것이다. 같이 살면서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여행을 하기 시작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첫 해외여행을 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주셨지만 반대로 자식들의 경우에는 부모님에게 특별한 것 없이 받기만 했던 상황에서 부모님에게 효도라는 것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요구라기 보다는 다른 집에 자녀들과 비교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 세 자매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신경은 쓰지는 않았다. 많은 것들을 피해입고 희생했던 부모님이였기 때문에 매달 용돈을 드리기 시작하고 아버지의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매번 크게 이야기 했었던 것을 보청기를 해주고 임플란트와 같은 비용이 점차 들어가는 것들에 대해서 모두 신경쓰고 지금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이 안에서 언니의 이혼이라는게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조금의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있어서 몇 달 살아보지 않고 이혼했다는 것에 부모님은 많이 실망도 하긴 했지만 나는 작은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행복해져야 부모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작은언니를 지지해주었다. 또한 부모님의 연세가 일을 하기에는 많이 버거운 나이가 되셔서 그런지 우리의 도움이 많이 필요로 되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노후대비를 많이 해놓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들 또한 부모님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실상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작은언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사소한 것들에 대해 투닥거리기도 하고 같이 뭐든 하려고 하는 것은 어렸을 때에 많이 못해봤기 때문에 서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어렸을 때에는 같이 무엇을 하자고 했을 때에 서로 싫어하다보니 같이 하는 것보다는 그저 따로 하거나 아예 안하는 것이 일상이였다면 점차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우리가 언제 이런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하면 더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뭐든 같이 하고 서로 배려해주려는 모습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한 면은 있지만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계속 노력하다보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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